2020년 개정 기계설비법 시행에 따라 공동주택 관리현장에 떨어진 ‘의무 폭탄’이 지금껏 말썽이다.
법 시행 초기에도 기계설비 성능점검과 유지관리자 선임을 둘러싸고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6년이 흘렀는데도 업무 중복과 관리비 부담 등 문제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3개월 후인 4월 17일 임시 기계설비 유지관리자 제도 종료를 앞두고, 공동주택에 대한 기계설비법 적용의 타당성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새로운 의무를 들고나온 것은 2020년 4월이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기계설비 성능점검 및 유지관리자 선임을 의무화한 것. 공동주택은 500세대 이상이거나 300세대 이상 중앙집중난방식이면 해당한다.
이 법과 관련해 현장에서 가장 크게 제기되는 문제는 ‘업무 중복’이다. 서울 모 아파트 A관리사무소장은 “아파트의 설비는 이미 안전관리계획에 따라 정기 점검을 하고 있고,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보수나 교체를 진행해 왔다”며 “기계설비 유지관리자를 별도로 선임하고 점검 등을 하라는 것은 기존 업무를 이름을 바꿔 다시 하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현장은 그 이전에도 공동주택관리법 제32조와 제33조에 따라 관리해 왔다.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관리주체가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설물 안전관리자를 지정하고, 안전관리계획에 따라 정기적인 점검과 유지·보수를 실시하도록 한 조항이다. 기계설비 역시 수선유지비 또는 장기수선충당금 등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관리해 온 것이다.
기계설비 관련 의무화 조치에 대해 “기준이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온 지도 오래다. 기계설비 보유 현황과 무관하게 일정 규모 공동주택이면 무조건 유지관리자를 선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미선임 시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니 자격증을 갖춘 기계설비 유지관리자를 선임해야 할 만큼 중요한 설비가 없는 아파트들은 “왜 이런 부담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경기 B소장은 “아파트에 설치된 기계설비는 보편적인 설비라 유지관리자 선임이 필요하지 않고,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규모가 크기만 하고 기계설비는 단순한 단지와 기계설비가 복잡한 업무시설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며 “실제 설비 현황을 기준으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현장의 지적들이 제도 시행 초기부터 난무했어도 제도의 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5년여간 △임시유지관리자 제도 및 유예 △관리주체 직접 성능점검 허용 등 일부 완화에 나섰을 뿐이어서 현장이 지적해 온 문제는 고스란히 남았다. ‘새 제도는 얼렁뚱땅 만들고 문제점이 드러나도 몇 년째 고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기 C소장은 “일단 제도를 도입했다가 문제를 제기하면 유예하네, 완화하네 하며 땜질 처방하는 잘못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처음부터 현장 상황을 충분히 검토하고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3년 본보가 전국 주택관리사 1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도 응답자의 77%는 ‘기계설비 유지관리자 선임 및 성능점검’에 대해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다. 당시 응답자 다수는 기계설비 유지관리자 인력 부족과 그에 따른 관리비 증가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으며 “인력난과 비용 증가에 비해 점검의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자격증 보유 여부보다 현장에서 실제로 근무하며 설비를 관리해 온 인력이 오히려 업무 숙지도와 대응 능력이 높다”, “현실성이 없는 제도”라는 목소리는 제도가 현장과 괴리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문제 제기 이후 2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제도 개선이나 부담 완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경기 D소장은 “공동주택에는 전기·소방·승강기 등 수많은 안전관리자 제도가 쌓여 있지만, 이런 제도를 만들면서 현장에서 실제로 책임을 지는 주택관리사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은 없었다”며 “안전을 강화하겠다면 여러 안전관리자 제도를 남발하지 말고, ‘통합 안전관리자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E소장은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돼야 제도가 안착할 수 있다”며 “공동주택 관리 현실을 반영한 근본적인 제도 정비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관계자는 “공동주택에 기계설비 유지관리자를 선임하도록 한 비합리적 기준이 과도한 유지비용 부담을 초래한다”며 “현장의 요구를 수렴해 국토교통부 건설산업과에 공동주택은 적용 제외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공동주택에 의무를 새로 부담시키려다 현장 반발 등에 따라 일단 거둬들인 사례가 2건 있다. 2023년 7월 개정 정보통신공사업법을 공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에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관리자 선임 및 성능점검을 의무화하려 했다가 △중복 규제 △관리비 상승 △공동주택 내 정보통신 설비 적음 등을 이유로 현장의 반발이 거세자 2024년 10월 의무대상에서 공동주택을 일단 제외했다. 같은 해 12월 개정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공포로 시설물 관리주체의 의무를 강화하려 했으나 유사한 이유로 공동주택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